본문 바로가기

책과 수다의 시간

[먼 북소리]

먼 북소리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문학사상사

글쓰기 아마추어들의 인생사 이야기만 과도하게 읽다가 정말 너무 오랜만에 읽은 full time 작가의 책. 그의 전공인 소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질이 좋은 건 어디서나 드러난다. 고급 천연 설탕과 고급 프랑스 밀가루와 고급 천연 유기농 버터로 만들어 정말 화덕에 넣고 구워낸 풍미 가득한 빵같은 글의 연속. 그래, 글이란 이런 거였어 라고 새삼 깨닫는다. 정신적 만족을 가져오는 건 이런 사람의 글이다. 물론 인생사 이야기도 배울 점은 있지만 감성의 충족을 채워주기 보다는 세상살이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거라 다른 분야의 문제.

 

지하철에서 혼자 킥킥대면서 읽어서,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순 없었다. 특히 이탈리아 부분은 '이건 진짜야'라고 '정말 꼭 좀 믿어줘'라는 그의 마음이 잔뜩 담긴 얘기가 정말 신뢰가 가질 않아서, '니가 그렇게 우긴다면 믿어는 줄게'라는 마음이 든다. 초반부를 읽을 때는 이런 삶이 부럽다 라고만 생각했다. 우리같이 매어있는 사람들도 일주일 휴가도 감지덕지인데, 3년이나 외국을 떠돈다니 이거야말로 꿈꾸는 삶이 아닌가.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느끼는 건 그렇게 사는 것도 역시 꽤 피곤하구나 하는 것. 어떻게 살아도 사는 건 피로는 동반하는 것인가봐.

 

소설과는 다른 아기자기한 맛도 있고, 솔직하게 써내려간 그의 마음 상태가 작가로써의 그를 다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하루키는 일본 작가이긴 하지만 일본적 색채가 별로 보이지 않는 글을 쓴다. 배경이 일본이긴 하지만, 그게 한국이어도 유럽이어도 미국이어도 그냥 상관없을 거 같은, 어디여도 좋을 거 같은 그런 일본. 그게 그의 강점이고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에세이에서도 역시나 그런 마인드로 사는 그가 보이고,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다르게, 소설가 하루키보다는 인간 하루키를 만나 이야기를 자분자분 듣는 기분이 들게 한다. 기분이 우울할 때 읽으면 엔돌핀 생성에 도움이 될 거 같은 책이다. 구매 고려중.  


'책과 수다의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49호 품목의 경매]  (0) 2009.10.30
[이기는 습관]  (0) 2009.10.23
[카지노]  (0) 2009.10.21
[존재의 무: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0) 2009.10.15
[여학생이면 꼭 배워야 할 힐러리 파워]  (0) 2009.10.14
[로마제국을 가다]  (0) 2009.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