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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수다의 시간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 10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이레

 

캐이트 윈슬렛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 더 유명한 책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 홍보에는 15살 소년과 36살 여인의 관계로 더 주목되었던 기억이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그런 그들의 사랑의 시작이었다. 평범한 눈으로는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지만, 나이를 빼놓고 본다면 어리숙한 연인 이야기였다. 소설 "로리타"가 생각난다. 로리타는 짝사랑이었던 거 같지만, 더 리더는 짝사랑이라기보다는 어긋난 사랑에 가깝다. "책읽어주기"는 그들 사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식이었다. 별 의식없이 책 읽어주던 미하엘. 사실 조금 귀찮기만 한 일이었으나 한나를 위해 그는 책을 읽었다. 책읽기-목욕-사랑-같이 누워있기. 그렇게 반복되던 그들의 일상에서 미하엘은 한나를 더 원하게 되지만 한나는 사라져버린다. 어느 연인에게나 자신들만의 의식이 있다. 매일 전화를 하거나 바래다주는 일반적인 일들부터 그들끼리만 통하는 표현이 있고 유머가 존재한다. 둘만이 하는 그런 의식들은 사랑을 공고히하고 단단하게 한다. 헤어짐 후에는 연인에 대한 기억과 동시에 둘 사이의 반복했던 행동들이 같이 떠오른다. 

 

그리고 8년 후 우연히 법정에서 미하엘은 한나를 만난다. 거기서 그녀가 사라져버린 이유, 그녀가 끝끝내 감추려한 비밀을 알게 된다. 어리석을만큼 단호하게 또 강하게 지키려하는 그녀의 비밀을 미하엘은 알아채지만, 그는 혼란에 빠진다. 이것을 말해야할 것인가. 무엇이 그녀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녀를 알기 위해 애쓰지만 그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와의 사랑의 시작도 헤어짐도 그리고 법정에 선 이유도 그 시작은 한 곳에 있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던 것인지, 그녀가 그를 사랑했던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가 육체적 욕망으로 그녀를 쫓았던 것처럼 그녀도 책에 대한 욕망으로 그를 쫓았던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은 다시 멀어지고, 미하엘은 평범한 삶을 쫓아간다.

 

욕망없는 삶은 무채색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는 그녀에게 다시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에게 답장이 온다. 드디어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녀의 답장에도 그는 책만 읽는다. 자신의 삶에 채색하기 시작한 그녀와 과거에 침착해 여전히 그녀의 욕망 중 하나로만 귀결해버린 그. 그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그의 삶도 여러가지 색으로 달라졌을텐데, 그들은 마지막까지도 어긋난다. 그녀가 떠난 후에야 그녀의 사랑이 단지 욕망만이 아니었음을, 스스로의 사랑도 단지 욕망만이 아니었음을 느릿하게 깨닫는다.

 

나는 사랑에 중점적으로 봤지만 책에 담긴 이야기는 단지 그들의 사랑만이 아니다. 유대인 학살에 관한 문제에 대한 고민,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들의 이야기 속에 촘촘이 베어있다.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이 안에 담긴 이야기는 쉽지만은 않다. 그들이 책을 읽어주며 사랑을 하고 그들만의 대화를 나누듯, 작가는 계속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이다. 폭넓은 강의 흐름같은 감정선을 따라 읽다보면 어느새 이 연인의 삶에 빠져들게 되며, 이들을 이해하고 싶어지고 답을 구하고 싶어진다. 나는 끝까지 답을 찾지 못하는 미하엘같았고, 진실을 숨기려하는 한나같기도 했다. 내 답은 어디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