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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수다의 시간

[서울의 낮은 언덕들]안개 가득한 도시를 떠돌다

서울의 낮은 언덕들 - 8점
배수아 지음/자음과모음(이룸)

 

손에 들어온 지 한참 된 책인데 비일상적인 표현과 어휘의 사용이 많아, 낯섬과 생경함으로 잔뜩 무장한 소설을 읽은 건 쉽지 않았다. 이름은 많이 들어본 작가였지만 제대로 소설을 읽은 건 처음인가 보다. 서사성보다는 흑백의 사진처럼 여백의 미와 동시에 자잘하지만 색감없는 글의 흐름에 몇 번이나 정신을 놓쳤다.

 

낭송전문무대배우 경희는 도시와 도시를 떠돈다. 카라코룸의 일원인 경희는 모든 곳에 머물 공간이 있지만 정착할 곳도 없다. 사실 그녀가 경희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서사 구조를 취하지 않고 경희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려주거나 경희에 관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이야기 한다. 그녀가 몇 살인지도 어떤 얼굴인지도 계속 안개 속이다. 그녀는 다른 도시를 "걸어서" 여행하지만, 특별히 그 여행의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특별한 계기가 있지도 않다. 그저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된 그녀의 여행은 종착역없이 걸으며, 사람을 만난다.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의 사람들 사이의 우연한 인연을 발견하며 도시의 모습이 다른 모습일 수 있어도 결국 이곳과 저곳은 같은 곳일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가 아는 공간을 떠돌지만 경희가 있는 공간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공간같기도 하다. 우리의 도시에 저런 곳이 있던가 싶다가고 어떤 이들의 눈에는 일상 속의 공간도 뿌연 안개 속 공간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있는 도시, 내가 머물렀던 도시의 구석 어딘가는 경희는 여전히 낭송전문무대배우로 "걸어서" 여행하고 있을 것 같다.

 

다시 한번 읽어도 그 흐름을 잡는 건 쉬이 되지 않을 책이라는 걸 알지만, 왠지 경희를 한번 더 만나고 싶기에 다시 책을 손에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