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 - 정채봉 지음/(주)코리아하우스콘텐츠 |
/정채봉 선집/이라고 해서, 일단 '정채봉'이 누구시더라, 이 알듯말듯한데 퍼뜩하고 떠오르지 않는 간질간질한 기분을 뒤로하고 소개를 읽으니, 우화/동화 이런 걸로 유명한 분이셨다. 두번째, '선집'은 또 뭐냐? collect의 의미, 選集이었다. 이 다섯 글자가 이 책을 다 설명하고 있었다. 아시는 분들은 여기서 아 대충 감이 왔다 이런 사람도 많겠다.
단언하지만, 책의 디자인과 분위기를 보니 내가 좋아하는 류는 확실히 아님. 나처럼 어설픈 현실 감각만 있고 한치 앞만 보며 살며, 소소한 행복보다는 강렬하고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에너지에 흥분하며 꿈과 행복,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중요함보다 그냥 나 혼자 즐겁게 살겠다는 마인드의 내가 이런 책을 좋아할리가 있겠냐고.
그러나 좋은 책이었어. 들어본 얘기도 많았고 그냥 그런 얘기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게 삶의 진실이란 걸까. 도덕 교과서 같고 유치원 때 다 배운 것이지만 잊고 사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 가끔 한번씩 읽으면 마음이 '순수'의 상태도 잠깐 돌아가는 거 같아. 물론 삐딱선의 나는 이런 류의 책을 쓴 분들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아둥바둥거리며 산 경험이 현저히 낮고, 경쟁을 이기고 얻은 것들의 달콤함을 몰라서, 이런 얘기를 하며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것들에 만족하고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건지도 라며 반박. 역시 돈과 명예가 주는 행복도 중요한 거라고. 돈과 명예가 있으면 선택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들이 엄청 늘어난다고. 이런 사람들은 돈만 벌다 간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겠지만, 돈만 벌며 간 사람들도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이들이 느끼지 못한 성취와 행복을 느꼈을 거고, 벌고 난 후의 행복도 알았을 거라 생각한다. 행복이란 건 다 기준이 다르니까.
나중에 내 가치관이 어린이와 같은 순수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음... 잠깐, 얘들도 근사한 장난감 받으면 행복해하잖아. 어린이와 같은 순수는 적합한 표현이 아닌 거 같다. 음.. 그래, 언젠가 도덕 교과서와 같은 행복을 꿈꾸게 될 수도 있겠지만-사람은 변하니까.- 지금의 나는 일단 아둥바둥하며 사는 이 순간도 꽤 재밌고 행복하거든. 나한테 맞는 행복은 이 책에서 보여주는 행복과는 일치되는 날이 별로 올 거 같지 않다. 다만, 내 삶의 중요한 테마인 다양성과 열린 마음의 자세를 배우는 차원에서, 이런 삶의 태도도 있다는 걸 배운 것으로 만족.
아, 문장이 군더더기가 없으면서도 서정적이고 아름다웠다. 최근 읽은 책들 중에 오랜만에 만난 정제된 문장.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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